안용복 장군 사당[安龍福 將軍 祠堂]
안용복 장군은 조선 숙종[1675~1720]때 동래 출신[현 수영구 수영동 부근]어민으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의 수군인 능로군이었다.
당시 왜인들이 우리의 울릉도와 독도를 죽도라 부르면서 자주 침범하자,
동료와 함께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시키고,
일본의 에도막부로부터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았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 수호에 큰 업적을 세워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장군이란 칭호를 받으신 분이다.
장군의 업적을 후세에 오래도록 기리고자
수영 구민들이 뜻을 모아 이곳에 사당과 동상을 건립하였으며,
1967년 건립된 수영공원 정상의 충혼탑을 함께 이전하여 새로이 단장하였다.
2001. 3. 26
부산광역시 수영구청장
수영고당[水營姑堂]
수영고당은 조선시대 수사[水使]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한 독신[纛神]의 제사[祭祀]를 지냈으며
이후 수영성민[水營城民]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토지지신[土地之神]의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현재의 수영고당은 일제시대 왜병의 희롱을 물리친 송씨 할매의 장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당에 모시고
독신과 함께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수영향우회에서 주관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일명 송씨 할매당, 산정머리 할매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영고당의 창건은 400여년전[임진왜란 이전]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그동안 제당이 오래되고 허물어져 1936년 중건[重建] 하였고
지금의 건물은 1981년 애향인[愛鄕人] 김기배[金己培]씨에 의하여 증수[增修] 되었으며
2003년 그의 아들 김종수[金鐘秀]씨가 개수[改修] 하였다.
제당의 정면에서 보아 오른쪽은 성주신당[成主神堂]이며 왼쪽은 독신묘이다
수영성 남문[水營城 南門]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7호로서 조선시대 경상좌수영의 남문이다.
수영성은 조선시대에 낙동강 동쪽에서 경주까지의 우리나라 동남해안을 방어했던
수군의 본영인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영[水軍節都使營]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 수영공원 입구에 보존되어 있는데,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서 200m쯤 떨어진 옛 수영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건립 연대는 1692년[숙종 18]에 좌수사 문희성이 성을 중수할 때 만든 것이라고 추정된다.
오랜 세월에 홍예석[虹霓石]이 붕괴될 우려가 있어 1993년 8월 해체한 후 보수하였다.
무지개모양으로 쌓은 홍예문인데, 흔히 돌문 위에 누를 지어 누대 혹은 누문 형식을 취했으나,
여기엔 돌문만을 만들어 놓고, 좌수영지에 의하면, 수영성에는 동서남북 네 곳에 성문이 있었다.
남문을 주작문[朱雀門]이라 하였는데, 6칸으로 규모가 가장 컸다.
남문 문루 위에는 큰북을 달아두고 쳐서 시각을 알리고, 이에 맞춰 성문을 여닫았다고 한다.
이 성문의 전면 우주석[隅株石]의 사각 돌기둥 위에 화강암으로 조각한 박견[拍犬]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특이하다.
박견은 조선개를 말하는데, 도둑을 지키는 개를 성문 앞에 둔것은 왜구의 동태를 감시하던 이 성의 성격을 말해준다.
부산 좌수영성지[左水營城地] 곰솔
천연기념물 제270호로서 이 나무는 오래된 큰나무[老巨樹]로서 부산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이다.
나이는 400년 이상이며 키가 22c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4.1m, 가지퍼짐은 동서로19m, 남북으로21.7m이다
조선시대 이곳에 좌수영이 있을 당시 이 나무에 신이 들어있다고 믿어 군사들이 나무로 만든 군선을 보호하고
무사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며 신성하게 여겼던 나무이고, 곰솔은 해송, 흑송이라고 하며 소나무과에 속하고 향토수종이다
남문쪽에서 내려다 보니 저기 멀리 수영 팔도시장이 보이네여~~
출출하면 시장가서 맛난것도 살수 있겠네여~~
수영사적공원 바로 옆에 있는 해운학사의 건물도 보인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아 마음도 편안하고 안정되어..
주민들이 우리고장의 역사탐방도 하고 산책길에 건강도 챙길수 있어 참으로 좋은 것 같다..
25의용사 건립문과 25의용단
25의용단은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2호이다.
이단은 임진왜란시 수영성에서 일본군에 저항하다 죽은 성민의 의용을 기리는 곳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경상좌수사는 수영성을 버리고 달아 났으며,
이곳에 주둔한 일본군은 7년동안 약탈과 살육을 감행하였다.
이때 수영성과 성민 25명은 성문 밖에 모여 "싸우면 이겨서 살 것이요, 싸우지 않으면 망하리로다.
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있거늘 어찌 삶을 구하여 산야로 달아날 것인가.
단 한번의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리라" 하고
피로서 맹세한 후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1609년[광해군 원년]에 동래부사 이안눌이 지방민의 청원에 따라 25인의 사적을 모아
정방록에 싣고, 이들의 집에 의용이라는 2자를 써붙인데서 25인이 드러났다.
그후 순조대[1800~1834]에 동래부사 오한원은
이들의 후손들에게 부역의 의무를 면제시켜주고,글을 지어 포상하였다.
1853년[철종 4]에는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수영공원에 비를 세워 의용단이라 하고,
매년 음력 3월 9월 정일 두차례에 걸쳐 경상좌수사가 제주가 되어 제향을 봉행하였다.
1894년 군제개혁으로 경상좌수영이 폐지되자, 수영면의 면장이 제사를 주관하였다.
일제시대에 일본면장이 부임한 이후에는 수영기로회에서 제사를 주관하였고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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