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石(백석)의 詩-女僧> 해방 전 백석의 시는 향토적 배경과 토속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훈훈한 공동체적 삶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백석은 1912년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夔行(기행)으로,
오산학교를 나와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꾜에 있는 아오야마 [靑山]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가 오산학교에 다닐 때 선배 시인 김소월을 몹시 선망했다고 한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여성>지의 편집을 맡고,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다음 해 1936년에 시집 <사슴>을 200부 한정판으로 간행하고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永生(영생)
여고보의 교원으로 전직한다. 1938년 교원직을 사임하고 다시 서울로 왔다가 1939년 만주의
長春市(장춘시) 동삼마로로 이주한다. 해방 후 귀국하여 신의주, 평양 등에서 살다가 1959년 黨性(당성)이 약한 작가들을 생산 현장으로
내려 보낸 ‘붉은 편지 사건’ 후 양강도 삼수 관평리로 쫓겨 내려가 1995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解說> 이 작품은 여승이 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의 과정을 통해 일제(日帝) 강점기에 어려운 삶을
살았던 우리 민족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빈곤으로 인해 가족 공동체는 허물어지게 되고 돈 벌러 집을 떠난 남편의 소식조차 몰라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떠돌다가 자식까지 잃게 되는 비극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시인이 직접 체험하여 관찰한 결과이며, 시인은 일인칭 관찰자가 되어 일제
강점기 속에서 농촌이 몰락하고 가족 구성원을 상징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토속적인 시어로 표현함으로써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역순행적 구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1연에서 여승의 현재의 모습을, 제2연에서 옛날 평안도 금점판에서 만났던 여인을 그리고 있다.
제3연에서는 그 여인의 비극적인 기구한 삶을, 제4연은 그 여인이 여승이 된 과정을 진술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여승이 고생길을 살아온 과정을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장면 장면이
선하게 떠오른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관찰자로 감정을 억제하여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려고
시행을 전부 ‘~다’로 끝낸다. 또한 이 시에 사용된 비유적 심상은 시적 긴장감을 부여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대상에 풍부한
시적 정서를 환기시킨다. 길에서 만난 여승은 시적 자아에게 절을 하고, 시적 자아는 여승의 합장을 기구한 삶의 한스러움을
애써 억제하려는 몸짓으로 보고 여승에게 쓸쓸함을 느끼고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된다. 여승에게서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는 것은 여승이 산길을 걸어왔음을 후각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여승을 보는 순간 여인의 지난 날의 지치고 찌든 생활 모습을 회상하며, 그것을 현재의 여승의
늙은 모습과 연관시킨다. 세상과 동떨어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모두에게 버림받은 존재로 살아온 여승의 ‘서러움’을
확연히 전달하기 위해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의 ‘불경처럼’이란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승려가 되기 전에 여인은 옥수수 행상을 하며 집 나간 남편을 찾아 여기저기 금점판을 떠돌게 되고,
‘파리한 여인’의 모습에서 지친 삶에 찌들린 처절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어려운 삶을 살았던 우리 민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대표한다.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어린 딸을 때리며
우는 여인의 모습에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과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의 감각적 표현이 비애감의 효과를 돋우고 있다.
지아비는 집을 나간 지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은 죽어 가족 공동체인
가정은 완전히 파괴된다. 결국 외톨이로 남은 여인은 승려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죽은 어린 딸도 가난하여 제대로 장례도 지내지 못하고 돌무덤으로 가매장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딸은 죽고 소식 없는 남편을 찾을 희망도 없어졌으므로 여인은 머리를 깎고 출가(出家)의 길을 택한다. 삭발할 때 떨어지는 ‘머리오리’를 눈물방울로 대치시켜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현실의 모든 슬픔과 번뇌에서 벗어나려는 여인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산꿩의 울음 소리는 거칠고
킄 소리 다음에 적막이 있어 더욱 쓸쓸하고 슬픈 느낌을 준다고 한다. 따라서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은 여인의 쓸쓸하고 슬픈 울음 소리를 산꿩의 울음소리에 비겨 투영한 표현이다. (이 상) 金源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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