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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 도자기 명품들

웃어봐요 2010. 9. 11. 22:17


 
빅토리아 여왕의 오스본 저택이 접시에 그려진 코플랜드의 1864년 명품 도자기

 


 

 
 
 


본차이나(Bone China)를 혹시 ‘중국에서 탄생한 자기’라는 뜻으로 착각하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본차이나는 널리 알려진 대로 ‘동물의 뼛가루를 섞어 구워 낸 도자기’를 말한다. 차이나(China) 또는 포슬린(Porcelain) 이라 불리는 도자기가 언제부터인가 본차이나로 통용될 만큼 그의 출생은 도자기 역사에서 엄청난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천년동안 전세계 도자기 시장을 독점하고 석권해 온 중국도자기를 제압한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본차이나가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도자기 분야에서 유명해진 또 하나의 이름이 있으니, 바로 영국이다. 이름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본차이나의 출생지는 다름 아닌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국은 최고급 도자기 생산국으로 인정 받는데, 사실은 본차이나가 영국을 도자기 강국으로 키웠다기보다 영국식 도자기 산업제도의 우수성이 본차이나를 낳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 관계를 이해하자면 도자기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당시 유럽의 사회 현상들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스페인의 이스파노모레스크, 이것이 건너가서 탄생한 이탈리아의 마졸리카(Majolica), 프랑스의 파이앙스(Faience), 네덜란드의 델프트(Delft) 등이16세기 유럽 도자기의 시조였다. 16~17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에 전파된 이들 자기는 도기와 자기의 중간 수준인 연질자기로, 1350도 이상에서 굽는 중국 백색 자기의 기술을 따라갈 수 없었다. 연질자기가 보편화될수록 도자기를 보는 유럽인들의 심미안은 높아졌고, 눈이 높아질수록 중국의 고급도자기를 소유하고픈 욕망 또한 커져 갔다. 당시 중국 도자기 하나가 집 한 채 가격으로 거래되었을 정




도다. 인도 항로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의 교역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마구 수입되었고, 그만큼 유럽의 돈이 아시아로 빠져 나갔다. 이렇듯 수요가 많고 돈이 되다 보니 유럽각국이 직접 도자기에 달려들었다. 특히 일찍부터 일본의 도자기를 받아들였던 네덜란드, 앞선 도자 기술을 선보였던 독일 등에서 중국 도자기에 버금가는 고급스러움을 재현하고자 혈안이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최고의 돈벌이를 영국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영국은 비교적 늦게 이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도자기 산업의 선두에 오르는 데까지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유럽은 전제군주제여서 도자기처럼 이익이 큰 사업은 대체로 국가가 직접 운영했다. 국영 기업인 만큼 도자기 사업체가 한 국가에 하나 정도만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달랐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내각책임제라는 비교적 민주적인 정치제도가 시행되었고, 경제적으로 자유무역주의와 자유기업주의가 정착되어 있었다. 덕분에 여러 귀족과 엘리트들이 도자기사업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다. 황금알을 낳는 백색 자기는‘18세기형 최고의 벤처사업’이자‘18세기형 블루칩’이었던 셈이다.
돈 많은 귀족들이 투자자를 자처하고 나섰고, 그들의 투자자금으로 도자기 회사와 공장들이 하나 둘 문을 열었다. 그들이 돈을 벌수록 투자자가 더 많아졌고, 투자자금이 많이 유입될수록 도자기 회사 또한 늘어갔다. 경쟁력과 성장속도에서 영국의 도자기 업체들이 단연 우위일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오랜 역사와 더불어 최고급 도자기로 평가 받는 첼시(Chelsea)와 로열 크라운 더비(Royal Crown Derby), 그리스로마신화의 아름다움을 재현해 최고 인기브랜드로 주목 받은 웨지우드(Wedgwood), 영국을 도자기 강국으로 이끈 리버풀(Liverpool), 뉴홀(New Hall), 데번포트(Devonport), 민턴(Minton), 벅스홀(Vauxhall), 로킹엄(Rockingham), 앤슬리 (Aynsley), 돌턴(Dalton) 등이 그 주역들이다. 잉글랜드 중부에 자리한 스토크온트렌트(Stoke-on-Trent)에 가면 도자기 생산 공장들을 비롯해 웨지우드와 스포드(Spode) 등의 방문객 센터, 여러 도자기 박물관들, 앤티크 상점 등이 있어서 영국의 유명 도자기 브랜드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스토크와 펜톤 등 6개의 타운으로 이뤄진 스토크온트렌트는 우리나라의 경기도 이천이나 광주 같은 영국 도자기공예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영국 도자기의 역사에 큰 전환점을 마련한 스포드의 본 차이나가 만들어진 곳 역시 스토크온트렌트였다.

처음에 스포드는 푸른색 밑그림 화법으로 유럽식 청화백자를 선보여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18세기말에 가벼우면서 견고하고, 얇지만 보온성이 뛰어나며,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내는 그릇, 본차이나를 개발하는데 성공 했다. 본차이나의 등장은 중국과 함께 영국을 세계 도자기를 주름잡는 양대 산맥으로 정착시키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수준급에 이르는 영국 도자기도 초창기에는 일본이나 중국의 스타일과 문양을 흉내내는 정도였지만 은식기의 모양새나 디테일을 응용하거나 그리스로마 시대의 디자인 기법을 차용하며 점차 고유의 스타일을 찾아 나갔다. 지금은 디자인과 견고성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그야말로 도자기 강국 영국이 되었다.

영국의 예술비평가 허버트리드(Herbert Read)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한민족의 예술성과 미학과 감수성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민족이 흙을 어떻게 만져 왔는가를 살펴보라.” 그의 말로 해석하자면 도자기만으로도 영국인들의 예술지수와 미학지수는 이미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셈이다.




 영국 국립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은 현존하는 가장 큰 도자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곳이 도자만 전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00여 개 전시실에 빼곡히 들어찬 400만 점 이상의 소장품들은 중세부터 근대를 아우르는 회화, 조각, 건축, 가구, 패션, 사진, 보석 등 말 그대로 다종다기한 예술을 품고 있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의 공예박물관”이라는 이곳을 향한 찬사에서 확인하듯이, 이곳의 진가는 단연 ‘도자 컬렉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를 비롯 중국 징더전, 독일 마이센, 프랑스 세브르, 터키의 이즈니크(Iznik) 등 인류 도자 문명의 발상지를 두루 아우르는 이곳의 도자 컬렉션은 규모와 다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도자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한 점의 도자 작품은 그 속에 인간의 역사를 담고 있다. 기원전 2500년 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겪어온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도자 작품은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 전시장을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고대 문화’ 섹션은 도자 전통의 시원을 짐작케 해준다. 기원전 1425년경 이집트 제18왕조 때 파이앙스(Faience), 즉 유약을 입힌 도자 재료로 만들어진 <푸른색 의식용 지팡이>는 이 섹션의 상징. 이집트 신전에서 발견되어 2미터가 넘는 길이와 신을 상징하는 듯한 동물 모양의 머리가 인상적인 이 도자는 고대 이집트에서 지배자의 힘을 상징하는 도구로 쓰였다고 한다. 기원전 2500년경 중국 산둥성에서 제작된 <세 발 달린 주전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중국자기의 원형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출품작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도자기로 개막 전부터 입소문을 탔다. 도자의 역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범위는 크고도 넓다. 기원전 4천 년경에 이미 물레를 돌려 도기를 빚었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송나라 시절(960~1279)에 만들어진 중국 도자는 그 어떤 나라, 시대 가운데에서도 뛰어난 아름다움과 기능성을 자랑한다. 석기, 초기 자기, 청자 등 다양한 제작 방식과 절제된 장식, 그리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유약 효과 등 도자 역사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이 시절의 도자는 ‘동아시아의 도자 발전’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용무늬 납작 병>은 이번에 소개된 작품 가운데 가장 비싼(약 100억 원) 도자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감상하기로 하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 생산지인 중국 징더전에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청화자기, 즉 백색의 자기에 코발트로 문양을

그려 넣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로 만들어져 도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이얀 백유를 입히고, 놀라우리만치 얇게 만들어진 <흰색 굽다리 잔> 역시 서방으로부터 수입된 포도주 등을 따라 마시는 데 사용되어 ‘국제 도시’로 유명했던 당나라의 명성을 유추케 한다. 우리나라의 상감청자(<용무늬 항아리>)와 일본의 다기(<바위가 있는 풍경 접시>), 베트남(<사자와 구름무늬 접시>), 그리고 캄보디아의 도자(<줄무늬 갈색 주전자>)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 터키 이즈니크, 이란 사파위, 네덜란드 델프트, 그리고 메디치 자기 등을 집대성한 ‘아시아와 서구: 교역과 상호교류’ 섹션은 도자 기술이 동아시아, 중동, 유럽 사이를 오가며 무역의 형태로 발전했음을 암시한다. 그 출발점에는 중국의 ‘청화자기’가 놓여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4세기 중국 도공들이 코발트를 안료로 선택해 자기에 그림을 그린 기술이 중동을 넘어 유럽으로 쑥쑥 전파된 것이다. 15세기 중엽 중국의 청화백자를 모방한 터키 서북부의 작은 마을 이즈니크 도자의 기술을 보여주는 <꽃무늬 대반>과 포르투갈의 페이소투(Peixoto) 가문의 문장이 그려지고, 뚜껑과 입구에 은으로 장식한 중국의 <페이소투 주전자>,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 일본의 도공이 중국 자기의 전통에 단순함이라는 취향을 입힌 <테두리를 패널로 장식한 접시> 등은 인류 교류 역사에 도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시각적으로 그려준다. <조롱박 모양 병>과 <이마리 병> 등 17~18세기 일본의 자기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아리타(有田) 지역의 도자들도 이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유럽의 주요 도자 생산지로 꼽히는 네덜란드 델프트의 도공들이 중국 도자의 전통을 응용해 꽃을 꽂을 수 있게 한 <꽃 피라미드> 역시 ‘꽃의 나라’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특징을 엿보게 한다.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의 분홍빛과 무광택 노란색을 담아낸 <복숭아나무가 그려진 접시> 역시 너무나 아름다워 전시장을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한동안 붙잡아 둔다.



 ‘유럽 자기’ 섹션은 도자라기보다는 한 점의 입체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이 섹션에서 기억해야 할 인물은 독일 작센 지역을 지배하던 아우구스트 2세이다. 유럽이 아시아의 자기를 모방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연금술사를 고용해 유럽에서 나오는 재료를 가지고 자기를 만들 수 있는 제조 기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1710년 독일 드레스덴 근처 마이센에 자기공장을 만들고, 이곳에서 실제 크기의 동물 형상으로 자기를 만들 것을 명령한다. 뱅센, 세브르, 첼시 등 영국과 프랑스의 초창기 자기 공장에서 인물과 동물을 모티프로 한 다양한 생김새의 자기들이 생산된 것은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어릿광대>, <목동의 시간>, <음악수업> 등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에서 그 모습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18세기는 영국의 스태퍼드셔(Staffordshire), 19세기는 중국의 징더전을 세계 도자의 중심지로 꼽는다. 그 중에서도 스태퍼드셔는 귀족을 주로 상대한 유럽의 다른 지역과 달리 중산층 등 아래로 시선을 돌려 차별화를 꾀했다. ‘스태퍼드셔의 산업화’ 섹션에 소개된 <법랑채 꽃무늬 찻주전자>와 <낙타 찻주전자>, <크림웨어 차와 커피 세트> 등은 도자 시장의 대중화와 이에 따른 당시 유럽인들의 식습관의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크림웨어 차와 커피 세트>는 백색 도기 기술 아래 동판에 문양을 새기고 그것으로 인쇄한 종이를 도자기에 전사시켜 같은 문양의 도자기를 대량생산케 한 18세기 영국의 기술력을 확인시켜준다. 다른 장르와 달리 도자 분야에서 유독 교류와 교역이 활발했던 데에는 새로운 기술을 찾아 나섰던 각 나라 도공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과거와 자연으로부터의 영감’ 섹션은 전 세계에서 과거와는 다른, 동시에 과거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전통과 자연을 중시했던 도공들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저술가이자 디자이너였던 A.W.N. 퓨진(Pugin)과 허버트 민턴(Herbert Minton)이 힘을 모아 탄생시킨 <고딕 복고 무늬의 접시>는 1851년 만국박람회에 소개되어 큰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서 발견된 가젤 병을 복제한 <알람브라 병> 역시 당대 최고의 프랑스 도예가였던 요제프-테오도르 데크(Joseph-Theodore Deck)의 기술력이 응축된 역작으로 꼽힌다.

 

 

 ‘20세기 도자’ 섹션은 이번 전시가 연대기순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시켜준다. 여기에서는 그 이름도 선명한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피카소가 1954년에 만든 <이젤 앞의 예술가>는 피카소의 상상력은 물론 20세기를 풍미한 화가와 조각가들이 도자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불린다. 20세기에 이르러 도자는 초기 모더니즘을 거쳐 영국의 리처드슬리(Richard Slee)가 만든 <빨아들인 모더니즘>처럼 기하학적, 추상적 형태를 갖추고, 이후 조각적인 형태로 전이해가더니 급기야

중국의 우캉이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법랑으로 그린 <저우언라이 초상 도판>처럼 실험성을 덧붙인 형태로 발전해나갔다. 사실 이번 전시를 정해진 지면에 텍스트로 설명하기란 상당히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의 핵심 소장품을 이 땅에서 감상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도자’라는 창조적 예술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인류 역사의 위대함을 측정케 했다는 점은 세인들의 기억 속에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출처;tong.nate 네이트 우수 블로그 왕관이예요justi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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