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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이름으로 청와대를 향해 뛴다 … 8인의 사랑과 야망

웃어봐요 2012. 7. 2. 23:57

 

 

남편의 이름으로 청와대를 향해 뛴다 … 8인의 사랑과 야망 



꿈꾸는 아내들

결혼 적령기 여성들이 꼽은 남편감으로 최악의 직업은 무엇일까. 바로 정치인이다.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 조사 결과다. 무슨 직업이든 남편에 대한 평가가 좋긴 어렵다지만,

정치인에 대해선 유독 싸늘한 반응들이다.

 그런데 정치인의 아내, 그것도 대선 주자의 아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최악의 남편감'과 함께 사는 그들은 도대체 어떤 여성일까.

 언론의 관심을 피해 두문불출하는 스타일에서부터,

남편을 위해 여성잡지의 모델이 되는 적극적인 스타일까지 각양각색이다.

데모하다 최루가스에 기절한 남학생의 얼굴에 물을 뿌려준 인연으로 맺어진 부부,

일제시대 때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친해진

양가 부친의 소개로 연을 맺은 부부 등 영화 같은 스토리도 있다.

부부보다 '동지(同志)'란 말이 더 어울리는 내외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그림자 내조를 하는 아내가 더 많다.

하지만 미국 대선에선 후보 본인보다 부인의 인기가 더 높은 경우도 있다.

지난 4월 워싱턴포스트 조사에선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과

공화당 후보로 굳어진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부인 앤의 지지도가

남편들보다 더 높았다. 주인공 곁의 부인에게도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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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재미없는 사람으로 비춰져 답답하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지지하고 싶어지는 건 남들 역시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숭배한다는 점 때문이라고. 정치인들도 이를 잘 안다.

 그들이 가까운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을수록 그들에 대한 평가도 따라서 높아진다.

이런 지지 확산이 대중에게 전파되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배우자다.  
그럼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권 주자로 불리는 정치인의 아내들은 어떨까.

정몽준·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두관 경남지사,

그리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부인의 경력과 내조 방식을 들여다본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처럼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출마 선언을 했지만 현재 배우자가 없는 후보(안상수 전 인천시장)는 제외다.

정몽준 부인 김영명

남편과 민생투어 다니며 맛집·명소 홈페이지 올려
여성지 표지모델 깜짝 등장


“잔소리를 자주 해요. 그게 미안하네요.”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부인 김영명(56)씨는 7일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정치인이면 옷을 좀 잘 차려입어야 할 텐데 만날 입던 옷 입는 걸 좋아해서 더 신경 쓰라고 항상 잔소리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김씨의 내조가 ‘잔소리’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그는 지난 6일 방송된 케이블방송 tvN의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정 의원과 함께 출연하는 등

남편과 많은 정치 일정을 함께 소화한다. 최근에는 여성잡지 ‘퀸’ 6월호 표지에

꽃무늬 블라우스에 흰 치마 차림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김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 대선에 출마했으니 열심히 해야지.

그러니까 여성지 표지 모델까지 나오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자신의 홈페이지(http://manjastory.com)에는 남편의 민생투어를 함께 소화하며 들렀던 맛집과 명소 등을 소개하고,

최신 유행가를 듣고 난 뒤의 소감도 적고 있다. 남편을 알리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인 것이다.

 고(故)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딸인 그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졸업한 미국 웰즐리 여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정 의원과는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이후 정 의원이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는 동안 더 가까워져 결혼하게 됐다.

김씨는 “미국에서 사귈 때 함께 테니스를 치곤 했는데

남편의 반바지 입은 모습이 멋있었다”며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정 의원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부자’라는 말이다.

7선 의원이기 이전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중공업그룹 오너이다 보니 사람들은 늘 ‘

보통 사람과는 생활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선에 김씨는 “남편을 직접 만나보면 다를 것”이라며 “진짜 소탈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은 김치 없이는 못 살고, 좋은 옷보다는 옷이 늘어졌어도 편안한 걸 좋아한다”며

남편이 소득 불균형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 기자

김문수 부인 설란영

둘 다 노조위원장일 때 만나
“갈 데 없으면 내게 시집 오라”에 “노동운동 하며 독신으로 살 것”


 

새누리당 김문수 경기지사의 부인 설란영(59)씨는 김 지사에겐 아내인 동시에 ‘평생 동지(同志)’다.

 둘은 노동운동 동지로 처음 만났다. 설씨는 지금도 김 지사를 대신해 도정의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7일 오전 수원에서 설씨는 경기도 적십자사 자문위원들과 9월 자선 바자회를 논의했다.  
오후엔 경기비전센터 수료생들과 용인의 장애인시설인 다솜의 집과 요한의 집을 각각 방문해 봉사활동을 했다.

이런 식으로 설씨가 소화하는 일정이 여성·노인·장애인·복지·종교·문화 분야 등에서 매일 서너 개씩이다.

그는 “선거운동보단 ‘도지사의 안사람’으로서 하던 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둘의 첫 만남은 1978년 8월. 당시 김 지사는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설씨는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었다.

이듬해인 79년 12월 김 지사는 설씨에게 “갈 데 없으면 나에게 오라”고 청혼을 했다.

그러나 설씨는 “노동운동을 하며 독신으로 살 것”이라고 거절했다.

이후 김 지사와 2년여 ‘밀고 당기기’ 끝에 둘은 81년 9월 결혼했다.

수배와 해직·구속을 되풀이하던 김 지사가 설씨의 친정아버지에게

“만인을 위해 살려는 사람이 한 여자를 못 먹이겠느냐”는 ‘명언’을 하며 결혼 승낙을 얻어냈다.  
그 뒤 김 지사가 2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포함해 재야 민주화운동을 하는 동안

외동딸 동주(30)씨의 양육은 물론 생계를 떠맡은 것이 설씨다.

김 지사가 94년 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부천 소사 지역구에 정착한 뒤에야

겨우 ‘가족’의 이름으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문수 지사가 왜 대통령감이냐’고 묻자 설씨는 “평생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해 살았고,

학생·노동·민주화운동을 거쳐 정치인으로서도 베스트 국회의원으로 뽑히는 등 타인을 위해 헌신한 점,

청렴결백하고 약거나 꼼수를 쓰지 않고 순수하다는 점 때문”이라고 답했다. ‘

남편으로서 김문수는 재미가 없지 않느냐’고 하자

“남편에 대한 불만과 욕심은 세상의 아내들과 똑같지만,

 사람이 두 가지 모두 잘할 수는 없기에 포기했다. 내가 이해심이 조금 넓다”며 웃었다.

정효식 기자

손학규 부인 이윤영

서대문 구치소서 인연 시작
전세 살지만 바가지 안 긁어
남편 즐겁게 사는 걸로 족해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과 부인 이윤영(66)씨의 인연은 서대문 구치소에서 시작했다.

 1968년 손 고문이 대학 4학년 때 불온서적을 소지한 혐의로 서대문 구치소에 구속된 적이 있다.

이씨도 이화여대 독서회 회원으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한명숙 전 총리 등과 독서모임을 하다 체포돼 있었다.

한 달 뒤 서울대 문리대 교정에서 우연히 만난 게 연애로 발전했다.

 사귄 지 5년이 지난 73년 3월 약혼했지만 손 고문이 ‘남산 부활절 연합 예배 사건’으로 체포됐다.

이씨는 “시어머니 되실 분을 모시고 면회를 다녀와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눌 때가 가장 로맨틱했다”고 회상했다.

 손 고문은 결혼 후에도 노동운동으로 또다시 수배를 받았다.

 도피 생활 중 한밤에 집에 전화해 이씨에게 황진이의 시 ‘꿈길에서’를 가사로 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고 한다.

이씨는 ‘새봄약국’을 열어 생계를 책임졌는데,

당시 미닫이 양철 덧문 셔터를 닫아주고 연탄을 떼어 주던 고마운 이가 고 김근태 전 의원이었다.

 경기도지사, 보건복지부 장관, 제1야당 대표를 지낸 손 고문은 아직도 전셋집에서 산다.

부인이 바가지를 긁을 만도 하건만 “교회에서 빈민선교를 할 때 월급이라고 할 수도 없는 돈을

첫 월급이라고 줬을 때 10원짜리 동전 하나하나까지 기쁘게 받았다.

남편이 열심히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면 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이 보는 손 고문과 집에서의 손 고문이 어떻게 다른가’란 질문에

“깨어 있는 모습과 잠을 자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또 “경기중·경기고에서 밴드부와 연극부 활동을 할 만큼 낭만적이고,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유쾌한 사람인데, 모범답안 같이 재미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는

지적을 받으니 아내로서 답답하기도 하다”고 했다.

 ‘내조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이씨는 이렇게 답했다. “내조라는 말엔 봉건적인 느낌이 있다.

 쑥스럽지만 우리 부부는 첫 번째로 평등부부상을 수상했다. 정치인도 하나의 직업이다.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아내의 역할이 특별히 다를 이유가 없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믿는 것이 내조이자 외조다.”

김경진 기자

문재인 부인 김정숙

군 면회 때 통닭 대신 안개꽃
성악 그만둔 지 29년 만에 노 전 대통령 묘역서 독창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과 김정숙(58)씨는 경희대 동문 커플이다.

 문 고문이 법대 3학년, 김씨가 음대 1학년 시절이던 1974년 처음 만났다.

 유신반대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정문 앞까지 진출한 문 고문이 최루가스를 맡고 순간적으로 기절했던 적이 있다.

 한참 기절했던 문 고문이 눈을 떠보니 누군가 얼굴을 물로 적셔주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김정숙씨였다. 그렇게 둘은 캠퍼스 커플이 됐고, 7년여 열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둘의 결혼엔 안개꽃이 큰 역할을 했다. 군(특전사)에 입대한 문 고문은 김씨의 첫 면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군 동료들의 성화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인이 면회 오면 떡이나 통닭같이 부대원들까지 배불리 먹을 걸 싸오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고문 앞에 나타난 김씨의 손엔 통닭 대신 안개꽃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수줍게 안개꽃을 내미는 김씨를 보며 술 안줏거리를 기대하고 면회실까지 쫓아 나온 동료들은

충격에 휩싸였지만 문 고문은 “이 사람을 평생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김씨는 문 고문과의 연애를 ‘면회의 역사’라고 정의한다. 감옥으로, 군대로,

사법시험 공부하던 대흥사 골방으로. 하지만 김씨의 면회의 역사는 결혼으로 열매를 맺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씨는 여간해선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문화제에선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남편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쫓아내고 서울 친정으로 가라고 한다”고 ‘폭로’해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그는 “결혼해서 너무 힘들었다”며 말을 이었다.

“남편의 변호사 수입이 변변찮아서 아파트 청약이라도 해볼까 싶어

청약부금을 넣은 뒤 남편에게 자랑 삼아 얘기했다.

그랬더니 눈을 부릅뜨고 호되게 야단을 쳤다.

 청약저축은 무주택자를 위한 제도인데, 우리는 조그만 아파트가 있지 않느냐는 거다.

그때 깨달은 게 참 많았다. 그날 사건이 제 삶에 지표가 됐다.”

 성악가 출신인 김씨는 지난해 8월 노 전 대통령 묘역 옆 특설무대에서 열린 봉화음악회에서

‘청산에 살리라’를 독창했다. 1982년 서울시립합창단을 그만둔 뒤 29년 만의 무대였다.

박신홍 기자

이재오 부인 추영례

남편 다섯 차례 옥바라지
한복가게 하며 마련한 집 담보로 대선 후보 기탁금


“이 반지 끼고 다른 남자 만나면 손가락이 썩는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결혼 전 부인 추영례(63)씨에게 프러포즈하며 반 돈짜리 금반지를 끼워줄 때 했던 말이다.

 으름장(?)이 통했는지 추씨는 민주화운동으로 다섯 번이나 감옥을 오간 이 의원 곁을 지켰다.

홀로 삯바느질을 해가며 옥바라지를 하면서 세 아이를 키웠다. 집안일만 한 건 아니었다.

남편의 석방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양심수 석방운동을 하는 등 남편과 한길을 걸었다.

43년을 ‘동지애(同志愛)’로 살아온 셈이다. 두 사람은 양가 부친의 소개로 만나게 됐다.

부친끼리는 일제시대 부역을 갔다가 만났다고 한다.

 이 의원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권창출의 일등공신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권의 2인자’로 불린 그를 야당뿐 아니라 권력 내부에서도 견제했고,

그해 4월 총선에선 낙선까지 하며 시련을 겪었다.

추씨는 “남편이 낙선한 뒤 미국과 중국을 돌아다니다 2010년 한국에 돌아왔는데,

병원에 가보니 영양실조였다”며 “그때처럼 ‘정치인 이재오’가 안쓰러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평생 남의 것을 욕심내서 잘살아 보려 한 적이 없는 청렴한 사람”이라며

“그런데 실세니, 2인자이니 하면서 평가받는 데 대해 본인도 억울해했고, 내가 봐도 안타까웠다”고 했다.

 권력의 미묘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였음에도 ‘킹 메이커’에서‘킹’이 되려는 남편을 왜 말리지 않았을까.

 그는 “세월의 풍파를 겪었으니 대통령이 돼서도 남의 아픈 사정을 헤아리며 잘잘못을 가려 잘할 것으로 믿었다”며

“투철한 자기 무장 속에 살아온 남편은 매 순간 나라 생각”이라고 응원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11일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낸 기탁금 6000만원(정식 후보자 기탁금은 3억원)을

서울 은평구 구산동 자택(23평형 한옥집)을 담보로 대출해 마련했다.

부부가 30년째 사는 이 집은 추씨가 한복 가게를 운영해 번 돈으로 샀다.

추씨는 “대선에서 떨어지면 집도 없어지고 오갈 데가 없어 큰일”이라며 웃었다.

허진 기자

임태희 부인 권혜정

4선 의원 권익현 고문의 딸
15년 된 아토스 몰고 봉사활동
남편에 대해 쓴 책 출간


 

‘당신만 함께한다면’. 그 뒤에 생략된 말을 되살려내면 이런 게 아닐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어디에든 갈 수 있다’.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다’도 가능하겠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부인 권혜정(51)씨가

‘나의 남편 임태희’란 부제로 곧 출간할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28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임 전 실장은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의 공무원이었고,

3선 의원이었고, 고용노동부 장관이었다. 권부의 핵심인 청와대에서도 17개월 있었다.

이제는 대통령이란 자리를 향해 뛴다. 권씨는 서문에서 그런 남편을 향해

“공직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매 순간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자랑이었다”며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권씨는 그간 “편하게 해주는 게 내조”란 신조로 살았다고 한다.

“가끔 속상한 일이 있어도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끝나는 일이 많았다”고 할 정도로

임 전 실장이 바깥 일에 몰두할 수 있게 했다.

임 전 실장이 재경부 과장이던 2000년 총선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도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임 전 실장이 국회의원이 된 뒤부터 지금까지 소형차인 아토스(1997년산)를 손수 몰고 곳곳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이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와 보폭을 맞추며 동행했다”고 고마워할 정도의 삶이다.

 주변에선 그런 권씨를 두고 “정치인 집안에서 큰 사람이라 다르다”고 평한다.

권씨의 부친은 4선 의원으로 민정당 대표까지 지낸 권익현 새누리당 상임고문이다.

권씨는 스무 살 무렵부터 지역구민이 밤늦게 찾아와도 부친이 직접 만나 귀 기울이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가난한 농촌 출신 수재인 임 전 실장과 유복한 실력자의 딸인 그가 만난 건 84년 권씨의 언니 함 들어가는 날이었다.

형부가 될 사람이 김태기 단국대 교수였고 함진아비가 김 교수의 경동고·서울대 친구인 임 전 실장이었다.

후일 함께 함을 팔러 간 친구가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한다. 세 번째 만남에선 권씨가

“월급을 탔다”며 고기를 샀고, 부친과 인사시켰다. 권씨는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고정애 기자

안철수 부인 김미경

남 앞에 나서기 꺼리는 성격
남편이 직원에 월급 못 줄 때 자신의 의사 봉급 건네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4월 11일 오전 서울 용산 한강로 제4투표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부인 김미경(49) 서울대 교수와 함께 나타났다.

기표를 마친 안 원장은 취재진 요청으로 투표함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카메라 앵글을 벗어난 지점으로 엉거주춤 몸을 뺐다.

시선이 부담스러워서였다. 안 원장은 혼자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이날 촬영된 투표소 보도사진에서 안 원장 혼자만 등장했던 이유다.

 남 앞에 나서길 꺼리는 김 교수의 성격이 잘 드러난 장면이다.

25세 때 올린 결혼식 이후론 한번도 화장다운 화장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남의 눈에 띄는 게 싫어 화사한 정장 한 벌 갖추지 않고 살았다는 그다.

 하지만 그의 이력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와 삼성서울병원에서

15년간 병리학 교수이자 전문의로 일했다. 마흔이 되자 의사 가운을 벗고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2002년 워싱턴주립대 법대에 입학해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땄다.

2008년 귀국 후 KAIST를 거쳐 지금은 서울대 의대에서 연구윤리 등을 강의하고 있다. 스펙만 따지면 남편 못잖다.

 부부는 서울대 의대 동창이다. 안 원장이 1년 선배다.

의대 내 가톨릭학생회에서 토요일마다 진료봉사를 다니면서 처음 만났다.

공부 욕심이 많았던 두 사람은 도서관에서 사랑을 키웠다.

안 원장은 김 교수에게 도움될 만한 책을 추천해주고 공부도 도왔다.

김 교수는 지금도 남편의 학습능력에 대해 존경심을 아끼지 않는다.

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같은 의대를 나왔어도 남편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계속 공부하면 노벨상도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으니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티 나지 않게 남편을 내조해 왔다.

1995년 안 원장이 회사를 차린 뒤 직원 월급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사정이 안 좋아지자 자신의 의사 봉급을 건네기도 했다.

97년 안 원장이 과로로 쓰러져 입원했을 때도, 2005년 잘나가던 회사 CEO를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랐을 때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원보 기자

김두관 부인 채정자

양품점에 식당에 ‘억척 살림’
도지사 선거 땐 수술 미루고 묵묵히 선거운동 도와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부인 채정자(51)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애를 했다.

채씨는 고교 1학년 때 당시 고교 3학년생이던 김 지사를 만났다.

채씨의 사촌이 소개해줬다고 한다. 김 지사는 채씨를 중학교 때부터 눈여겨봐 왔다.

 그때부터 10년 연애 후 둘은 결혼했다. 하지만 연애는 결코 로맨틱하지 않았다.

 김 지사는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도 친구들부터 만난 뒤 복귀 전날에야 전화해

“저녁에 잠깐 보자”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반갑게 나가면 역시나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편지 한 통이 프러포즈의 전부였고, 음력 1월 3일인 결혼 날짜도 김 지사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설 연휴 고향 분들이 다 모여 있을 때 결혼식을 올려 번거롭지 않게 하자는 이유에서였다.

 김 지사가 1995년 남해군수가 될 때까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채씨는 양품점에, 식당에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려갔다.

 주변에서 “순애보가 따로 없다”고 할 정도다. 너무 힘들어 두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걷다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없으면 이 남자와 아이의 삶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김 지사가 낙선을 거듭했을 때도 채씨는 “실패한 게 아니에요. 작은 인생 공부를 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더 준비를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감사해요”라며 오히려 김 지사를 위로해 왔다.

 2010년 경남도지사 선거 때는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였지만 와병 사실을 외부에 일절 알리지 않고

묵묵히 선거운동에 전념한 뒤 취임식이 끝나고 나서야 입원 수속을 밟은 일도 있다.

 당시 군대 간 아들이 선거운동 기간에 휴가 날짜가 잡혔는데

“오해받을 필요 없다”며 휴가도 선거일 이후로 연기하도록 했다.

“가족이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돼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전하는 채씨의 소망은 이렇다.

“칭찬은 못 받더라도 욕은 먹지 않는 정치인이었으면 좋겠다.” 소박한 바람이다.

하지만 정말 정치인들이 어려워하는 일이 바로 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