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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이코노미스트 社說

웃어봐요 2012. 1. 13. 09:19

 

한국 기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이코노미스트 社說
김정일이 제 命대로 살고 간 것을 개탄하고 정권교체를 강조하다.
趙甲濟  
    어제 서점에서 영국의 권위 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를 사서 社說(사설)을 읽었다. 김정일 사망 관련이었다. 제목의 副題(부제)부터가 간명하였다.
 
“地上(지상) 최악의 나라의 정권교체를 바라기만 해선 안 되고 계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첫 문장이 이러하였다.
<정의감이 있는 모든 사람들과 수많은 희생자들에게는 김정일이 제 命(명)대로 살다가 自然死(자연사)하였다는 게 정말 잘못 된 일이었다>
 
社說은 김정일의 惡行(악행)을 가차 없이 비판하였다. 북한을 지옥으로 만들어놓고 자신은 ‘달콤한 人生(인생)’을 즐긴 자라고 평하였다. 꼬냑을 마시고, 초밥을 즐기고, 핵개발을 하고, 여객기를 폭파하고, 영화에 집착, 남한 감독을 납치한 독재자. 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일에겐 북한이 영화촬영 세트장이었다고 표현했다. 이 무대에서 그는 神(신)을 연기하였고, 인민들을 그를 숭배하는 役(역)을 맡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자연사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소수 지배층을 보호하고, 뚱보 아들에게 이 무대세트를 인계하는 데도 성공하였다.
 
<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은이 인수한 북한의 딜레마에 대하여, ‘개방을 해도, 개방을 안 해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정리하였다. ‘무슨 짓을 하든지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Their dilemma is that whatever they do, North Korea will eventually collapse)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이게, 중국이 김정일에게 여러 번 개방에 따른 기적적인 성과를 보여주어도 변화를 모색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는 것이다.
 
이 주간지는 ‘개탄하여야 할 진실’이 있는데, 그것은 주변국들이 김정일 살인정권을 지탱해주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은 세계적인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한국은 북한을 흡수할 때의 비용을 겁내어, 일본은 통일된 한국을 경계하여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도록 움직였다고 하였다. 이코노미스트의 社說(사설) 결론이 감동적이다.
 
<김氏 정권은 영원히 버틸 순 없다. 어떻게 하면 정권을 교체할 것인가의 논의를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하여서 뿐 아니라 북한의 잊히고 짓밟힌 인민들을 위하여 그러하다>
 
왜 이런 社說(사설)을 한국의 대표적 언론에선 읽을 수 없었을까? 이념과 도덕의 기준이 확립되지 않으면 時流(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 논설, 읽어도 도무지 무얼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글을 쓴다.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큰 피해를 당한 적도 없는 영국의 주간지가 이런 분노와 正義(정의)의 사설을 쓰는데 저 악당 손에 수백 만의 人命(인명)을 희생당한 한국의 기자들은 왜 정의를 세우지 못할까? 노예는 제대로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기자들의 노예근성을 드러낸 셈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사설은 국민행동본부나 조갑제닷컴의 論調(논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국에선 이런 글을 과격하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보수층이나 식자층에서도 많은데, 영국에선 常識(상식)이다. 이런 나라가 一流(일류)국가이다.
 
이코노미스트 사설과 같은 좋은 글은 건전한 도덕성과 이념과 분별력을 근거로 하여서만 쓸 수 있다. 중도로 위장한 기회주의적 정신구조를 가진 이들은 애매모호한 글을 쓴다. 한국사회의 좌경화와 한국어의 한글專用 이후 좋은 글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2012-01-04, 11:11 ] 조회수 : 3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