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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년 만에 핀 고려연꽃--

웃어봐요 2011. 8. 3. 09:00
칠백년 만에 핀 고려연꽃--

      경남 함안(咸安)박물관 성재기 계장은 지난 해
      국립가야문화연구소가 진행중인
      성산산성 발굴작업에 합류했습니다. 
      연못 터에서 연꽃 씨앗을 찾기 위해서였죠.
      산성은 6세기 중반 이후 아라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5월8일 오후 성씨는 도토리를 닮은
      연씨 열 알를 수습했습니다. 
      "땅을 4~5m쯤 파내려가자 진흙층이 나왔습니다.
      호미도 잘 안 들어갈 정도로 단단하고
      공기는 전혀없었죠.
      그곳에서 씨를 발견했습니다.

      요즘 것보다 약간 작아 고대 씨앗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씨앗 둘을 즉시 한국지질자원연구소로 보내

      연대를 측정했습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으로 확인한 결과 한 알은

      서기 1160~1300년일 확률 93.8%,
      다른 것은 서기 1270~1410년일 확률

      95.4%로 나타났습니다. 

      7세기 전 고려시대의 것임이 밝혀진 것이죠.
      그 때부터 고려 연꽃을  피우기 위한

      정성어린 나날이 시작됐습니다.
      다섯 알을 받은 함안농업기술센터는 두 알을

      성공적으로 발아시켰고,
      함안박물관에서도 세 알 중 하나가
      두꺼운 껍질을 뚫고 여린 싹을 내밀었습니다. 
      발아한 연씨에서 연잎이 무성하게 자랐으나

      꽃을 피우지는 못했습니다.

      연씨는 발아시킬 경우 이듬해부터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7일 새벽, 어둠이 걷힌 함안박물관

      뜰엔 팽팽한 긴장감과 셀렘이 가득했습니다.
      6월20일 꽃대가 출현한 고려 연이 이 날

      꽃망울을 터뜨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아침 햇살이 살갗에 와 닿자 

      분홍색의 뾰족한 꽃봉우리는
      생명력을 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단단하게 붙어있던 꽃잎 중의 하나가

      살짝 몸을 젖혔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죠.
      꽃잎들이 하나하나 떨어져나갈 때마다

      봉우리는 미세하게 부풀었습니다
      예민한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신비한 개화!
      숨죽이며 지켜보는 눈길들이 부끄러운 듯
      봉우리는 쉽사리 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네 시간여,
      연꽃은 700년 세월을 뛰어넘어 꽃잎을

      모두 벌리고 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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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색이 섞이지 않아 선명하게
      붉은 색과 단정한 형태.
      요즘 홍련과 달리 색이 연하고
      꽃잎 수도 적었습니다.
      고려불화가 전해주는 모습 그대로였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분화되기 이전의
      순수함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부활한 연꽃은 '아라홍련' 이라는

      애칭을 얻었습니다.
      이 지역이 고대 아라가야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몇 송이에 불과한 이 꽃을

      많은 사람이 볼 수는 없을까요.
      성계장은 이미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함안 공설운동장 옆의 천연습지를

      연꽃테마공원으로 조성할 겁니다.
      몇 년 뒤면 아라홍련이 호수를 가득 덮은

      장관을 누구나 볼 수 있겠죠.
      일본은 1951년에 수습한

      2000년 전의 연씨 세 알로
      지바에 연꽃공원을 만들어 놨습니다."

      * * * 자료제공 ...함안 박물관 * * *

곽예의 연꽃구경(삼도헌의 한시산책168)

 

 

 

  

     연꽃 구경(賞蓮)

 


  -곽예(郭預,1232-1286)-

 

 賞蓮三度到三池(상련삼도도삼지)  

세 번이나 연꽃 보러 삼지를 찾으니 


 翠蓋紅粧似舊時(취개홍장사구시)  

푸른 잎 붉은 꽃은 예전과 다름없네.


 唯有看花玉堂客(유유간화옥당객)  

오직 꽃을 바라보는 옥당의 손님만이


 風情不減 如絲(풍정불감빈여사)  

마음은 그대론데 머리털만 희어졌구려.

 

 

 <어귀 풀이>

 

 賞(완상할 상, 즐길 상), 度(번<회수> 도) 翠(비취색 취) 蓋(덮개 개)
 翠蓋(취개 : 푸른 연잎) 紅(붉은꽃 홍) 粧(단장할 장) 紅粧(홍장 : 붉은꽃으로 단장함)
 玉堂(옥당 : 고려 홍문관의 별칭, 홍문관의 부제학 이하 실무관원의 총칭)
 風情(풍정 : 풍치, 모습) 減(덜 감)   (살쩍<귀 앞에 난 흰머리>빈)
  絲(빈사 : 귀 앞에 하얗게 난 머리)

 

 

 <삼도헌과 함께 감상하기>


여름 더위가 한창인 이맘때면 연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내는 철이지요.

저는 꽃 가운데 연꽃을 제일 좋아해서 가끔 경북청도 유등리나

무안의 백련을 완상하러 가지요.


오늘은 저처럼 연꽃을 좋아한 고려시대 곽예란 사람이 읊조린

<연꽃구경>을 소개하려구요.

그는 문장에 출중해서 일찍부터 명성을 얻었지요. 

임금의 명을 받아 중요한 문서를 다듬는

한림원에 있을 때 당시 도읍이었던 개성의 용화원 숭교사란

절의 연못에는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하곤 하였지요.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우산 하나 달랑 들고

맨발로 연못으로 걸어가 꽃구경에 넋을 잃기 일쑤였지요.

그가 이 시를 지었을 때 몇 년 전에 보았던 연꽃은

그 해에도 변함 없이 파아란 큰 잎새에

수줍은 듯 붉은 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자신의 모습은 어느새 귀 앞머리가 허옇게 변하고 있으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고 읊조렸지요.  


 중국사람 가운데 연꽃을 좋아한 사람도 있었지요.

송나라 때 유학자인 주돈이는 특히 연꽃을 좋아해서

<애련설>이란 유명한 문장을 지었지요.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가 않다.

속은 비었고 겉은 곧다. 넝쿨도, 가지도 치지 않는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꼿꼿하고 깨끗하게 심어져 있다.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업신여겨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홀로 연꽃을 좋아한다"라고 노래했지요.

 

그 뒤로 연꽃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지요.

위의 글 가운데 '향원익청(香遠益淸 :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이라는 말이 있지요.

문인화의 연꽃화제로도 많이 사용되는 글귀이지요.

연꽃은 멀리 있어도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은은한 향기를 풍기기에

더욱 맑고 고귀한 꽃 중의 꽃인 거지요.

또 연꽃은 한 줄기에서 하나의 꽃만을 피우지요. 

가지치거나 넝쿨쳐서 복잡하거나 지저분하지 않은 속성을 가진 식물이지요.

우리도 이와 같은 연꽃이 지닌 속성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면 좋겠지요.

진흙속에 자라지만 맑은 꽃을 피우면서 고고한 자태를 지닌 연꽃처럼. 

 

 <지은이 소개>

 

 곽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초명은 왕부(王府). 자는 선갑(先甲).

1255년(고종 42)에 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에 임명되었지요.

원나라에 성절(聖節)을 하례하고 돌아오던 도중에 55세로 죽었지요.

문장 잘 짓고 서법(書法)에도 능해 독특한 서체를 이루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