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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일 때는 몰랐네 이 아름다움을

웃어봐요 2011. 3. 22. 23:06

 

  


플라스틱 컵에 집게를 꽂아 만든 조명(왼쪽)과 플라스틱 소주잔으로 만든 조명.

건축가 천의영, 일회용 컵으로 만든 작품展

상상해 보자. 당신에게 두 가지 물품이 주어졌다.

수백 개의 싸구려 플라스틱 컵과 케이블 타이(전선 묶는 플라스틱 끈) 몇 묶음.

이 둘을 활용해 뭔가를 만들어 보라면 당신의 선택은?

지극히 소박한 재료 앞에 무슨 장난인가 당황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하잘것없는 잡동사니가 예술작품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17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푸르지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건축가 천의영(48·경기대 건축학과 교수·사진)씨의 전시회

'콘 스킨 스페이스(CON SKIN SPACE)'전은 일회용 컵의 무한 변주를 보여준다.

노란 일회용 컵 수백 개가 그의 손을 거쳐 공상과학 영화에서

뚝 떨어져 나온 것 같은 혹성 모양 조명으로 변했다.

플라스틱 소주잔 300여개로 만든 조명은 솜털이 몽실몽실 묻어 있는 민들레 홀씨 형태다.

식당에서 흔히 사용하는 투박한 파란색 플라스틱 컵은 비(非)정형화한 거대한 구조물로 엮였다.

전시를 앞둔 14일 만난 그는 "현대 건축에서 형태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대두한 게 표피"라며

"새로운 표피를 실험하기 위해 일상적인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봤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 쓰인 일회용 컵은 대학(서울대 건축학과) 시절의 추억과 맞닿아 있다.

"대학 때 기숙사 오픈 하우스가 있었어요. 이벤트를 고심하다가 종이컵을 이으면 뭔가 되겠다 싶었지요.

" 기숙사 친구 몇몇과 자판기 옆 컵꽂이에 버려진 종이컵 5000개를 씻어

스테이플러로 집었더니 큰 조형물이 완성됐다.

그는 "하찮은 물건이 여러 개 모임으로써 그럴싸한 작품이 되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며

"여러 사람이 작업에 참여해 네트워크를 이루는 과정도 의미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미국 LA를 찾은 천씨는 대학 시절의 그 추억 체험을 되풀이했다.

코스트코·타겟 같은 미국 대형 마켓에서 색색깔 플라스틱 컵을 사서 딸아이와 조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족 간의 협업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웃사람, 아이의 친구까지 20여명이 작업에 참여했다.

이웃의 정(情)과 기발함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어느덧 9m가 넘는 '컵 구조물'이 완성됐다.

천씨는 이 결과물을 모아 지난해 LA의 앤드루샤이어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다.

외계에서 날라온 혹성이 아니다. 노란 플라스틱 컵들을 케이블 타이로 엮어 만든 공 형태의 조명. 뒤쪽으로 보이는 파란 플라스틱 컵은 식당에서 흔히 쓰는 컵이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번 전시는 LA 전시의 증보판. 국내의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개당 80원짜리 플라스틱 컵 수백 개를 이었다.

케이블 타이나 철제 사무용 집게를 꽂았기 때문에 접착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익숙한 소재를 한 발짝 떨어져 낯설게 보기는 천씨가 오래전부터 시도해 온 작업이다.

1990년대 말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신장개업' 코너에 출연해

장사가 안 되는 가게의 인테리어를 초저예산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

그는 "비용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싼 물품을 찾다 보니 오히려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했다.

하얀 김치통 수백 개를 건물 외벽에 붙이기도 하고 양은냄비에 구멍을 뚫어 조명을 만들었다.

천씨는 "개체로 존재하는 흔한 사물들을 모아 새로운 개체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라며 "우선 수천 개의 컵으로 외벽을 감싼 건물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전시 문의 (02)556-5218



건축가 천의영(경기대 건축학과 교수)씨가 전시회 '콘 스킨 스페이스(CON SKIN SPACE)'전에서

일회용 컵의 무한 변주를 보여준다. /이진한 기자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